박상영 작가의 [1차원이 되고 싶어]를 하루만에 다 읽었다.
나는 소설 속 '나'의 사랑이 참 이기적이고 무모하다, 라고 생각했다.
손을 잡으면 함께 시궁창으로 굴러 떨어질 것이 분명한 '태리'와의 관계야 백번 천번 이해한다고 하지만,
세상에 나를 있는 그대로 내놓을 수 없다면, 내 사랑 역시 조용히 뒤에 숨기는게 맞는 선택 아니었을까.
그가 '윤도'를 상대로 가졌던 감정은, 사랑을 하는 당사자로서 지극히 온당한 마음이다.
설렜다가 사랑했다가, 빠져들었다가, 증오하게 되는 것.
이렇게, 사랑의 다음은 '덜 사랑'이 아니라 '증오'라는 것을,
우리는 수많은 책과 영화, 드라마를 통해 이미 체득해왔다.
하지만 '나'는 '태리'처럼 쓰레기통에 처박힐 용기도 없으면서,
'무늬'처럼 전교 왕따가 될 자신도 없으면서,
맹목적으로 '윤도'의 사랑을 원하고(갈구한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만)
원하는 만큼의 피드백이 돌아오지 않자 그를 원망하고, 감시하고, 분노한다.
참 팔자 좋은 사랑타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사랑의 '기준' 안에서는 그렇다.
내 존재가 그의 옆에서 '드러내어 행복'이 될 수 없다면,
그 마음마저 숨기는 것이 맞다. 그게 상대와 나를 위하는 길이다.
금기의(그러니까 사회적으로) 사랑이라면, 사랑을 하는 내 마음이야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그 마음이 상대에게 부담이 될 수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함부로 표현하는 것은 큰 실례라는 것이다.
왜냐면, 표현하는 순간 받아들여지길 원하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여지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더 맹목적으로 집착하고,
오롯이 내 것이 되길 원하고, 그가 나와 똑같은 마음이길 바라고,
그렇지 않으면 분노하고 화가나는게 사람 마음이니까. 그게 사람이니까.
'니 마음이 어떻든 상관없어. 그냥 내 마음이 이렇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
나만 괴롭기 싫으니까 너도 함께 불편함의 길을 같이 가 줄래? 와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전반적인 인물 구성이나 해결의 주체, 일관적이지 못한 감정선 또한 아쉽다.
또한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성적소수자'였다는 설정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물론 그런 상황이 실제에 없으리라는 법은 없지만)
속독을 못하는 나는 아무리 흐름이 빠른 책이라 해도 4-5일은 붙잡고 있는게 보통인데,
그 소설 한 권을 꽈 채운 하루만에 읽었다는 것은,
그 만큼 책이 가진 몰입도나 이야기가 나에게 좋게 다가왔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차원이 되고싶어]는 읽는 내내 진흙밭을 걷는 기분이었다.
작품을 늙는 동안은 그 안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빠져 나오고 보면 한시 바삐 씻어내기 바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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