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책 / / 2022. 11. 1. 14:11

희망없는 성장통 / 프란츠 카프카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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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시골의사 : 북앤피플 (naver.com)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기분으로 잠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흉측스런 벌레로 변해버린 것을 발견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서술이 금기시되는 작법 혹은 작문의 세계에서

유일한 '예외'로 인정되는 도입이다.

 

아마 카프카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변신'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 도입만큼은 충분히 익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변신'은 '부조리' 그 자체이다.

 

어느날 아침,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벌레'로 변해있는 것을 알게 된 그레고르 잠자는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아휴 몰라 잠이나 더 자고 생각해보자" 

하며 이불속을 파고 들 뿐이다.

 

당연히 꿈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

 

어쩌면 그레고르에게는 '내가 지금 벌레가 됐다'는 믿기지 않는 현실 보다는

'무슨일이 있어도 여섯시 기차를 타야한다' 하는 정형화된 삶의 패턴이 더 현실에 가까웠으리라.

 

그레고르는 몇 해 전 사업으로 집안을 거덜 낸 아버지를 대신에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나가 영업 실적을 올려야 하는 외판사원이다.

가족들의 안락한 삶을 유지시키기 위해 그는 매일 출장을 다니며 여관을 떠돈다.

온 가족의 생계와 큰 집을 유지하고 하녀를 부리는 모든 비용이

그레고르가 얼마나 '움직이느냐'에 달려있는 것이다.

 

"얘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니?", "너 안 떠날거니?", "오빠! 제발 문 좀 열어봐요!"

하는 가족들의 목소리는 읽기만 해도 벌써 숨이 막히는,

그간 그레고르의 삶이 얼마나 윤기 없이 팍팍했을지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마치 모두가 그레고르의 출근만을 주시하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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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별레로 변한 아들, 그리고 오빠를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는 차갑기 그지없다.

 

몰인정하게도 아버지는 그를 몰아넣으려고 슈슈 하고 사납게 소리질렀다.
그러나 그때까지 그레고르는 뒷걸음질을 해보지 않은 터라 동작이 느리기 짝이 없었다.
만일 돌아설 수만 있었다면 그는 곧 자기 방으로 갔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는 방향 전환으로 인해 아버지의 신경질을 돋울까 두려웠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를 발견하고, 그레고르의 아버지가 보인 첫 행동이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간으로서의 삶을 잃은 그레고르지만, 그래도 이 와중에 아버지를 자극할까 두렵다.

 

어머니는 몸을 불 밑으로 깊숙이 숙이고 양장점에서 주문받은 화려한 속옷을 바느질했다.
여점원으로 취직한 누이는 행여 더 나은 직장이라도 얻어볼까 해서 저녁마다 속기와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가족들은 그레고르가 경제적 구실을 할 수 없게 되자, 저마다 삶의 전선으로 뛰어든다.

충분히 일할 수 있었음에도, 가계에 경제적 보탬이 될 수 있었음에도 그들은 모른 척 했으며,

그레고르를 '유용한 경제적 도구'로 이용해온 것이다.

 

가족들은 부양자에서 피부양자가 된 그레고르를 그 누구도 돌보지 않는다.

돌보기는 커녕, 갑자기 등장해 가족을 놀라게 했다는 이유로 그의 등짝에 단단한 사과를 꽂아버리고,

사과가 그레고르의 등에서 썩어갈 때까지, 그 누구도 그 비수를 제거해주지 않는다.

 

앞서도 말했듯이,

'변신'은 '부조리' 그 자체이다.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한 물음과,

'갑자기 이렇게 된 너의 마음을 어떨까' 하는 헤아림과 동정은 없으며,

'기능을 상실한 것'에 대한 비난과 원망만 난무한다.

 

또한, 이 소설은 비조리극이면서 성장소설이다.

무능력하고 무기력했던 가족 구성원들이

가족의 삶을 지탱해주었던 한 존재이 파멸을 발판삼아 밝은 미래를 꿈꾸는,

애도도 없고 사랑도 없고 희망도 없는 성장소설이다.

 

그들이 전차에서 바라본 밝은 꿈과 미래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우리가 무심코 던졌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맞아서 가슴을 폭격당했던 

저마다의 사과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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